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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네 살 단어 사전_청춘 (지은이: 썸머 / 장르: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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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온다.

토요일 아침부터 카톡 진동이 울려대는 바람에 잠이 깬다. 단체 카톡에 언니들의 사진들이 서로 경쟁하듯 올라온다. 벚꽃, 튤립, 길에 핀 이름 모를 꽃들로 카톡방이 가득 찬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운동하면서, 산책하면서, 부부 동반 등산하면서, 친구와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들일 테지. 언제부턴가 엄마의 폰 갤러리도 그랬다. 나이가 들면 갤러리 속이 ‘꽃만 있는 사진’으로 가득 찬다고 엄마를 놀려댔다. 아침부터 꽃 사진을 보니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덜그럭, 달그락 식탁이 분주하다. 아침 일찍 일어난 남편과 아들이 아침 식사 중이다. 딸은 일찍 일어나 씻었는지 욕실을 나오고 있다. 정수기에서 마실 물 한 잔을 받으며 내가 말한다.

“꽃구경 가자!”

남편이 아침 먹은 걸 치우며 좋다고 동의한다. 아들이야 당연히 따라나설 것이다. 딸은 친구와 약속이 있다며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위이잉~~ 딸 방에 드라이기 소리가 가득 찬다. 아이들이 커 가면서 무언가를 함께 한다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 함께 하고 싶지만, 아이들의 시간을 존중해 줘야 한다. 그래서 두 번은 묻지 않는다.

산책에 나설 준비를 한다. 대충 머리를 올리고, 강아지들에게 리드 줄을 채운다. 나서려는데 옅은 화장을 한 딸이 나와 전신 거울에 이리저리 자신을 비춘다. 얼마 전 생일선물로 사준 하늘하늘한 원피스다.

남편과 아들과 강아지와 집 앞 강변으로 산책을 나선다. 봄기운이 완연하다. 길 양쪽으로 벚꽃들이 활짝 피었고, 튤립으로 꾸며진 예쁜 화단도 있다. 강아지들이 꽃향기를 맡느라 킁킁거린다. 공원의 한쪽에 공간을 마련해 두고 봄에는 튤립을 심고, 각 계절에 맞는 꽃들로 꾸며 놓는다. 구청에서 하는 일인가? 그들의 부지런함이 새삼 고맙다. 여기저기 사람들이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꽃 사진만을 찍고 싶어 자꾸만 올라오려는 손에 정신을 차려본다.

“아무래도 남자 친구 만나러 가는 것 같지? 미니 말이야.”

“맞아. 그런 것 같아.”

남편의 목소리에 섭섭함이 묻어나온다. 걱정과 함께, 이렇게 부모의 품을 떠나는가 싶어 아쉽기도 하다. 지금쯤 어딘가에서 다른 나무의 벚꽃들을 보고 있을 테지.

딸아이보다 한 살 많았던 열일곱의 나도 그와 꽃구경이다. 꽃도 빛이 난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도 빛났다. 나도 빛났을 테지. 그때는 나와 그가 꽃이었다.

순간, 나의 강아지 봄이가 힘들다고 배를 깔고 엎어진다. 마흔이 넘어선 나에게는 그런 봄이

가 꽃이다.

저녁 시간이 훨씬 넘어서야 딸이 들어선다. 조금 일찍 다니라고 한마디를 한다. 봄이와 쪼꼬도 그런 내가 동의하는 듯 언니를 향해 ‘멍멍’ 한다. 평소라면 입이 나와 삐쭉 하며 대답을 할 것인데, 상냥하게 알겠다 대답하며 내 옆에 앉는다. 아이가 열심히 폰 속 사진을 들여다본다. 나는 살짝 곁눈질해 본다. 누군가가 찍어 주었을 사진 속에 꽃과 함께 꽃 같은 아이가 서 있다. 아이의 얼굴에 살며시 핑크빛 꽃봉오리가 맺힌다.

봄이 온다.

마흔네 살 단어 사전_청춘: 꽃 사진으로 갤러리를 채우지 않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