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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네 살 단어 사전_부모 (지은이: 썸머 / 장르: 미래소망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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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사는 딸아이가 손주들을 데리고 온다고 연락이 왔다. 사위와 작은 베이커리 가게를 운영하느라 서로 정신이 없어 미처 여름휴가를 준비하지 못했을 것이다. 남편이 옆에서 전화 내용을 듣더니 마당으로 나간다. 내 옆에서 졸고 있던, 봄이와 쪼꼬가 벌떡 일어나 꼬리를 치며 남편을 따라나선다.
남편이 마당 한쪽 편 창고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들고나온다. 자세히 보니 손주 녀석들의 물놀이를 위한 간이 수영장이다. 남편이 마당에 내려놓자 봄이와 쪼꼬도 궁금해하며 이쪽저쪽 뛰어다닌다. 뼈대를 하나하나 조립하며 기초를 세운 뒤, 커다란 파란색 방수천을 일일이 걸어야 한다. 제법 큰 수영장이라 설치 후에 나와 같이 청소도 해야 하고, 물을 받는 데도 꽤 시간이 걸릴 것이다. 남편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천천히 조립에 나선다.
나는 마당이 보이는 작업공간에서 종이와 펜을 꺼낸다. 남편의 수영장 조립이 끝나면 함께 장을 볼 목록들을 적어나간다. 한창 클 남자아이 둘이라 고기가 빠질 수 없다. 쌈을 싸 먹을 채소들은 마당 한쪽에서 뜯으면 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와 사위가 좋아하는 막걸리, 우리 딸이 좋아하는 수박도 사야겠다. 목록에 빠진 것이 없나 꼼꼼히 살펴본 후, 안방 붙박이장에서 딸아이네가 사용할 요와 이불을 꺼내 거실로 갖고 나온다. 거실의 넓은 공간이 딸아이네의 잘 곳이 될 것이다. 나도 함께 옆에 누워 낮은 천장을 바라보며 수다를 떨 셈이라 넉넉하게 이불과 요를 준비하였다. 폭신한 베개도 여러 개 꺼낸다. 방을 하나만 만들기를 잘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마당과 연결된 기다랗고 큰 창과 같은 문을 열면 넓은 나무로 만든 평상이 있다. 빗자루로 쓸고 걸레질을 여러 번 했다. 아이들이 오면 꺼내는 큰 상을 펼 것이고, 그 옆에서 남편은 고기를 구울 것이다. 나는 주방을 들락거리며 찌개와 밑반찬을 꺼내 올 거다.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여름 볕이 덥지만, 딸아이네가 도착해 저녁을 먹을 즈음엔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 것이다.
아, 부엌 한쪽 선선한 곳에 담가둔 오디주를 꺼내야겠다. 오늘은 사위와 딸과 한잔해야지. 도시에서 고단하였을 아이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줘야지.
마흔네 살 단어 사전_부모: 먹고 싶은 음식과 꿀잠이 보장되는 영원한 쉼터
#청춘 다, 시 #다시 유랑 #드라마 <도깨비> #공간의 의미 #부모라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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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다, 시> 프로그램에 참여한 청춘 작가의 작품입니다.
본 프로그램은 2024년 부산광역시, 부산문화재단 <부산문화예술교육지원사업[돋움]> 사업으로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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