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de> <img src="/icons/book-closed_gray.svg" alt="/icons/book-closed_gray.svg" width="40px" />

마흔네 살 단어 사전_책임감 (지은이: 썸머 / 장르: 에세이)

</aside>

내 품에 안긴 너는 참 따뜻하고 포근했어. 뒤뚱뒤뚱. 아직 잘 걷지도 못하는 너를 안으면, 내가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된 것 같은 그 마음을 자랑하고 싶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때 내 품속 너는 참 따뜻하고 포근했던 것만은 사실이야.

내 덩치보다 큰 그 녀석이 너를 안고 있던 내 앞에서 컹하고 짖으며 뛰어들던 그 순간을 기억해. 나는 두려워서 꼼짝할 수 없었어. 그 순간을 다시 되돌려 봐. 내가 소리라도 질러서 도움을 요청했다면, 작지만 있는 힘껏 발길질로 그 녀석을 뻥 차버렸다면 무언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나는 너무 무서워 그 녀석에게 너를 내어주어 버렸어. 그 큰 녀석의 입에 너는 그저 조그마한 장난감 같았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소리를 지르며 그 녀석을 쫓아갔지. 너를 입에 물고 달려가던 그 녀석은 갑자기 휙 하고 너를 던져버렸어. 시골길 작은 고랑에 폭 빠지는 네 모습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어. 내 소리침을 듣고 누군가가 도움을 주었는지, 내가 나뭇가지로 너를 건졌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아. 하지만 고랑에서 건져진 뒤, 숨을 헐떡이며 찬 바닥에 누워 있던 너의 모습은 선명하게 기억이 나.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모르겠어. 하얗게 질려 있던 나를 보고 엄마가 한숨 자라며 등을 토닥여 주었어. 엄마는 그때 너보다 내가 어떻게 될까 봐 더 걱정이었을 거야. 엄마의 걱정스러운 토닥임에 잠이 스르르 들어. 그렇게 너를 지워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두 아이와 두 강아지의 엄마가 되고 가끔 네가 생각이 나. 우리가 함께 한 날은 너무 짧아서 너를 다시 만나더라도 너를 알아보지 못할까 걱정이 돼. 네가 먼저 나를 알아봐 주고 달려와 준다면, 꼭 이 말을 전하고 싶어.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좀 더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살도록 노력하고, 널 만나러 갈게.

마흔네 살 단어 사전_책임감: 내 품 안에 너를 지키기 위해 그 녀석을 있는 힘껏 발로 뻥 차버리는 것

#청춘 다, 시 #다시 고백 #손보미 <축복> #잘못에 대한 고백 편지

<aside> <img src="/icons/bookmark-outline_lightgray.svg" alt="/icons/bookmark-outline_lightgray.svg" width="40px" />

<청춘 다, 시> 프로그램에 참여한 청춘 작가의 작품입니다.

본 프로그램은 2024년 부산광역시, 부산문화재단 <부산문화예술교육지원사업[돋움]> 사업으로 지원을 받았습니다.

</asi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