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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네 살 단어 사전_여행 (지은이: 썸머 / 장르: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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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로 떠나는 비행기 안은 여행자들의 설렘으로 가득 찬다. 팔짱을 꼭 끼고 기대앉은 연인, 무릎 위에서 조그만 아기를 들어 올렸다 내렸다 하는 아빠와 까르륵 웃는 아기, 야무지게 챙긴 자기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창밖 사진을 찍는 초등학생과 흐뭇하게 바라보는 엄마. 창가에 앉은 나 역시 설렘으로 두근거렸다. 두근거림의 절반은 두려움이었을지도 모른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기장의 방송이 들린다.
“지금 우리 비행기는 후쿠오카를 향해 떠나고 있습니다. 35분간의 비행을 마치고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하게 됩니다. 안전하고...”
35분이라... 신혼여행이 첫 여행이었고, 항상 가족과 했던 여행이 전부였다. 44년 만에 혼자 도전하는 여행에 딱 맞는 시간이라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후쿠오카 공항에서 하카타 시내에 있는 숙소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국내선 터미널로 이동하여 지하철을 타야 하는 제법 복잡한 이동이었지만, 미리 블로그를 통해 머릿속에 그려 두었기에 어렵지 않았다. 체크인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터라 짐만 맡기고 숙소를 나섰다. 점심은 김해 공항에서 먹었던 터라 여행하러 오기 전부터 눈여겨보았던, 도심 한가운데에 있는 일본정원에 가 보기로 했다. 20여 분을 도시를 가로지르며 걷자니 9월 후쿠오카의 더위와 습도가 공격해 온다. 정원을 들어가는 작고 오래된 나무 문이 보여 걸음을 멈추자 땀이 주르륵 목뒤로 흐른다. 나름 갖추어 입은 원피스 깃이 땀으로 젖어 온다. 낯선 곳으로 연결된 비밀통로 같은 나무 문을 들어선다. 반듯하게 놓인 돌길이 나온다. 양쪽으론 가느다랗고 살짝 휘어졌지만, 잎이 풍성한 나무들이 돌길에 그늘을 만들어준다. 네모난 돌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는데, 네모나지 않은 돌들은 그 모양을 보완해 주는 다른 돌들과 만나 또 네모를 만든다. 칸에 잘 맞추진 돌들을 밟으며 깡충 걷는다. 마치 어릴 적 친구들과 게임을 하듯이. 돌길이 끝나는 곳에서 왼쪽으로 돌아서니 입장료를 받는 곳이다. 백엔. 내 지갑엔 공항에서 환전한 만엔 짜리 두 장뿐이었다. 이동을 교통카드로 해서 잔돈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깜빡했다. 아까 지나온 편의점도 5분 정도는 걸어야 할 텐데, 다시 돌아가야 하나?
“한국인이세요?”
한 여자가 말을 건넨다.
“아... 네...”
“혹시 곤란한 상황이라면 제가 입장료를 내어 들릴까요?”
평소에 남에게 도움을 쉽게 청하지 않는 터라 선뜻 “네” 하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우물쭈물 망설이는 나를 뒤로하고 그녀가 손가락 2개를 펴며 200엔을 내고 외친다.
“후타리데스.”
감사하다고 말을 하기도 전에 그녀가 내게 입장권을 건넨다.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쿨하게 뒤돌아서 그녀가 정원에 들어선다. 입장권을 파는 곳에서 정원 전체가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작은 정원이었다. 그렇기에 앞선 그녀와의 거리가 멀지 않다. 그제야 나는 그녀를 찬찬히 살펴볼 수 있었다.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이곳저곳을 살피며 사진을 찍고 있다. 어깨까지 오는 히피펌에 꽤 라인이 파인 까만 민소매 티, 카키색 반바지. 편안해 보이는 샌들에 노란색 페디큐어. 귀걸이는 없지만, 두 줄로 늘어진 가죽 목걸이를 하고 있다.
다가가 감사를 전하려다 그녀의 시간을 방해할까 다시 정원에 집중해 본다. 작지만 예쁜 돌들로 잘 꾸며진 연못도 있고, 연못으로 흐르는 작은 폭포의 물줄기가 제법 시원하다. 연못 안에 꽤 큰 붕어들이 일부는 나를 따라 일부는 그녀를 따라다닌다. 연못을 가로지르는 짧은 다리를 지나면 나무들로 만들어진 그늘이 있는 곳에 앉아서 쉴 수 있는 의자나 평상도 놓였다. 그중 한 의자에 앉아 팔을 뒤로 기대어 위를 쳐다본다. 나무들 사이로 새파란 하늘과 큰 하얀 구름과 쨍한 햇빛이 눈부시다.
그녀는 평상에 자연스럽게 누워 사진을 찍는다. 카메라를 위로 향해 하늘을 찍는가 싶더니 이내 여러 가지 표정과 포즈를 취한다. 그녀를 뒤로하고 다실로 연결된 실내로 들어선다. 말차와 작고 예쁜 다과가 함께 나오는 말차 세트가 500엔이다.
“맛차셋토, 플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