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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d (지은이: 해밀 / 장르: <Wild> 영화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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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인생에서 무언가 큰 깨달음을 얻으려면 산티아고 순례길을 꼭 걸어야 한다는 듯 모두가 그리로 향하던 때가 있었다. 길을 걸으며 삶의 진리를 깨우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상상만 해도 설레고 멋진 일이지만 나는 애초에 그곳에 갈 생각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갈 엄두를 내지 못했을지도. 이 시대 청춘이라면 한 번쯤 도전해 볼 만한 길이라고들 했지만, 아빠가 돌아가신 후 내 청춘은 먹고살기에도 빠듯했기에 돈 내고 고생하는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영화 <와일드>의 주인공 셰릴은 상처 때문에 망가진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멕시코 국경에서 캐나다에 이르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을 떠난다. 자기 몸보다 더 크고 무거운 가방을 들기 위해 낑낑대고, 맞지 않는 신발 때문에 발톱이 빠지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계속 가? 말아?’를 고민하는 그녀. 포기하면 쉽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는 그녀의 모습은 비록 과거가 나를 파괴했더라도 아름답게 살기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생의 의지를 나타낸다. 그런 셰릴의 끈기는 그녀의 엄마에게서 기인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셰릴은 누구보다 사랑하는 엄마에게 말로 상처를 주는 나쁜 딸이기도 했다. 셰릴은 남편에게 맞고 살다 도망친 몸으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학교 진학을 위해 공부하는 엄마를 무시한다. 그러나 그녀의 엄마는 살고 싶다고 말한다. 오늘보다 훨씬 끔찍한 날들도 있겠지만 거기에 질식해 죽는 것보다는 살기를 택하겠다고. 그러니 네 최고의 모습을 찾으라고. 엄마를 병으로 잃고 난 후 슬픔의 황야에서 자신을 잃어버린 후에야 숲에서 빠져나오는 길을 찾아냈다는 셰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는 말한다.

“흘러가게 둔 인생은... 얼마나 야성적이었던가.”

나는 상처 받으면 그걸 그대로 안은 채 속병을 앓는 편이다. 셰릴처럼 마약과 섹스에 덤벼들 만큼 담이 크지도 않고, 술을 잔뜩 마시다 쓰러질 만큼 흐트러짐에 관대한 편도 아니다. 오히려 그 상처를 빨리 잊어버리려 외면하는 쪽에 가깝다. 나도 만약 셰릴처럼 상처에 마음껏 슬퍼하고 힘껏 망가지며 실컷 소리 질렀다면 마음을 복구하는 것이 더 빨랐을까? 감정도 자꾸 억누르면 경직되고 무뎌져 버린다는 사실을 몰랐다. 셰릴이 자신의 상처를 표현하는 방법이 마음에 들진 않지만 적어도 그녀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에 솔직했다. 슬픔이 오면 오는 대로 고통이 닥치면 닥치는 대로 흘러가게 두면서 오롯이 상처를 직면하고, 그로 인해 방황하고 또 끝내 극복할 길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었음을 너무 늦게 깨달은 것이다.

영화가 끝난 뒤 셰릴이 방황할 때마다 나타나 그녀를 지켜보던 여우를 생각했다. 영화에서 여우는 큰 비중이 있는 장치는 아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멀리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여우는 절망스러웠던 상처를 털어버리고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는 다리를 건너는 셰릴을 한참 지켜보다 발길을 돌린다. 셰릴은 급히 여우를 쫓아가 보지만 닿을 수 없다. 하지만 셰릴은 알았다. 이제는 혼자서도 길을 씩씩하게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을. 영화에 나오는 여우는 어쩌면 돌아가신 엄마이자 셰릴의 양심이었을 거다. 항상 피노키오 곁에 맴돌며 그를 바른길로 인도하려 했던 양심 귀뚜라미 지미니처럼. 아름다운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못하게 하는 마음의 강한 힘.

이 영화는 실패해도. 포기해도. 망가져도 괜찮다는 위로를 전하고 있다. 이미 망가진 나일지라도 받아들이고 인정하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으로 성숙할 수 있다고 말이다. 셰릴은 제대로 살기 위해 수천 킬로미터나 되는 먼 길을 걸었다. 나 또한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보진 않았지만, 그보다 멀고 험한 나만의 인생길을 걷고 있다. 꽃길을 걷고 있는 친구를 보면 괜히 움츠러들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길 앞에서 좌절할 때도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시작된 레이스인 것을. 나를 지켜봐 주는 여우는 가족과 친구들이다. 그들이 있기에 나는 망가질 수 없다. 살다 보면 인생이 죽고 싶을 만큼 괴로울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하늘은 인간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시련만 준다는 말도 있듯 그런 일이 닥쳐온다 해도 나는 결코 스스로를 망가뜨리지 않을 것이다. 두 발이 부르트도록 헤맨 만큼 내 땅인 법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길을 걷는다. 살아있는 나를 느끼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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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다, 시> 프로그램에 참여한 청춘 작가의 작품입니다.

본 프로그램은 2024년 부산광역시, 부산문화재단 <부산문화예술교육지원사업[돋움]> 사업으로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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