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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Heaven (지은이: 해밀 / 장르: 영화 <윤희에게> 속 편지 패러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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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흰 눈 내리던 추운 겨울 멀리 떠난 J에게

도착한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계속되는 비로 어항 속처럼 습하고 무더운 장마의 계절을 지나고 있어.

벌써 네가 떠난 지도 22년이 넘었구나. 나는 너 없는 세월 동안 어른이 되었단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나를 쏙 빼닮은 아이도 낳았어. 네가 바라던 외교관은 되지 못했지만, 꼭 해보고 싶던 드라마 작가 일도 해보고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오손도손 잘 지내고 있어.

꿈을 이루기 위해 고향 대구를 떠나 서울로 향했고 이제는 사랑을 찾아 부산에서 살고 있어. 사주에 역마살이 있어서 외교관이 되면 좋겠다던 점쟁이 말이 아주 틀리진 않았나 봐.

너와 비슷한 나이가 되고 보니 참 궁금한 게 많아지더라. 네 꿈은 뭐였을까?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두 아이의 아빠로서 한 집안 장남의 책임과 의무가 아닌 네가 진짜 진짜 가슴속에 고이 간직해 온 꿈 말이야.

J야. 요즘 난 길을 잃은 것 같아. 결혼과 출산으로 드라마 작가 일을 접고 부산으로 내려온 지도 7년째. 중간중간 다른 직종에서 일해보기도 했지만, 사정상 커리어를 계속 이어가지 못했어. 그렇다고 글을 꾸준히 쓰지도 않고 있어. 글을 쓰지 않으면 가슴이 터져버릴 것만 같던 시절이 지나서일까? 좀처럼 글이 써지지 않아.

한 남자의 아내로서 한 아이의 엄마로서 홀로 남은 엄마의 딸로서 하루하루 버텨내느라 무척이나 권태롭고 위태로운 계절을 보내는 중이야.

네 꿈은 뭐였을까? 몸과 마음을 짓누르는 책임과 의무투성이던 삶 속에서도 너를 살게 했던 꿈 말이야. 나는 요즘 네 안부를 궁금해하며 내 꿈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고 있어. 아쉽게도 아직 결론은 내지 못했어. 그저 너를 생각하다 보니 네가 좀 더 보고 싶어졌을 뿐이야.

J야. 그곳에선 부디 나와의 기억을 꼭 잊어주기를 바라. 가족도 친구도 모두 잊고 네가 이루고팠던 꿈으로 남은 날들을 채우길 바라. 아프지 말고 평안 하렴.

2024년 비가 내리는 여름날 청춘 시절의 너를 그리워하는 나이 들어버린 내가

추신 : 그래도 가끔 꿈에는 나와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