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de> <img src="/icons/book-closed_gray.svg" alt="/icons/book-closed_gray.svg" width="40px" />

I Am Ready (지은이: 해밀 / 장르: <레이디 버드> 영화 에세이 (영화 소개 프로그램 ‘출발 비디오 여행’ 코너 패러디))

</aside>

레이디 버드.jpg

"안녕? 내 이름은 ‘레이디 버드’라고 해."

여기, 자신을 ‘레이디 버드’라 명명하는 한 소녀가 있습니다. 딸이 언제나 가능한 최고의 모습이기를 바라는 엄마도 있죠.

자, 오늘은 정체성을 찾아 방황하는 소녀와 철과 겁을 따블로 상실한 딸 때문에 속 터지는 엄마의 이야기를 모아 봤습니다.

감독 그레타 거윅의 자서전적 영화 <레이드 버드>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고향 새크라멘토에 있는 학교로 진학하는 게 싫었던 소녀는 달리는 차 안에서 뛰어내립니다. 그 덕에 새 학기부터 팔에 깁스를 하고 나타나 자신의 이름을 본명이 아닌 ‘레이디 버드’라고 소개하죠. 친구들에게 주목받고 싶었던 레이디 버드는 절친 줄리와 함께 연극반에 지원합니다. 오디션 신청서를 쓸 때부터 레이디 버드의 강한 자의식이 튀어나오죠. 이름란에 쓴 예명을 ‘인용 부호’로 강조하고 그것을 절친 줄리가 따라 하자 너와 난 다르다고 선을 긋고 맙니다. 하지만 그녀의 절친 줄리도 만만치 않게 응수합니다. “그건 네 생각이지.”

망아지처럼 날뛰는 호르몬의 영향으로 자아 형성기를 제대로 겪고 있는 두 소녀에게 범생이 미소로 다가온 남자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레이디 버드가 늘 동경했던 푸른색 대저택에 살고 있는 부잣집 도련님 대니 오닐이었습니다. 특별해지고 싶은 욕망을 실현해 주기에 딱 맞는 대니가 호감을 표시하자 옳다구나 하고 그와 연인이 되는 레이디 버드. 부잣집에서 태어나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취향의 남자친구 덕에 우쭐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생이 어디 내 입맛대로 호락호락하게 잘 굴러가는 것이었던가요. 완벽해 보이던 남자친구 대니의 비밀을 알게 되고 인생의 씁쓸함을 맛보게 되죠.

실연의 상처를 안고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게 된 레이디 버드는 우수에 찬 눈빛으로 책을 읽고 있던 잘생긴 티모시 샬라메, 아니 카일에게 첫눈에 반하게 됩니다. 카일은 인기 밴드 멤버로 독서와 사색을 즐기는 부잣집 도련님이었습니다. 남들과는 다른 특별함을 지향한다는 공통점을 계기로 둘은 급격하게 가까워지는데요. 레이디 버드는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를 읽으면서도 정작 자신은 기득권 세력의 안락함을 누리는 카일을 보며 괴리감을 느끼게 됩니다. 자신의 첫 경험을 소중한 너와 하고 싶다는 카일의 말에 어른의 세계로 입문하게 된 레이디 버드. 하지만 달콤한 말과는 달리 자신과의 첫 경험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며 무심하게 행동하는 카일을 보며 상처받고 맙니다.

연애는 망했지만 상류 사회로의 편입을 포기하지 않는 레이디 버드. 이혼한 가정에서 가난하게 자랐지만, 마음이 잘 통하는 절친 줄리를 뒤로 하고 부자 친구들에게 접근합니다. 학교 핵인싸인 제나와 친해지기 위해 그녀가 싫어하는 선생님에게 반항도 해봅니다. 마침내 제나와 가까워진 레이디 버드는 제나 집에 놀러 가게 되고 으리으리한 그녀의 집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자신의 집은 이 마을에서 가장 큰 푸른색 저택이라고요. 전 남친 할머니 댁을 자기 집이라 거짓말하게 된 레이디 버드는 거짓이 들통날까 전전긍긍하게 되고, 그때부터 제나와 함께 있는 것이 불편해집니다.

졸업 파티를 앞두고 엄마와 함께 드레스를 고르러 간 레이디 버드는 핑크색 드레스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엄마 때문에 속이 상합니다. 무난하고 평범한 인생을 살길 바라는 엄마와는 달리 튀고 싶어 하는 딸의 동상이몽은 오늘도 합의가 되지 않았던 거죠. 엄마는 말합니다. 네가 언제나 가능한 최고의 모습이길 바란다고. 딸은 대답합니다. 이게 내 최고의 모습이면 어쩌냐고. 레이디 버드는 사실 엄마에게 예쁘다는 칭찬을 듣고 싶어 하는 평범한 딸이었습니다. 딸의 마음을 알게 된 엄마는 화해의 손길을 내밀고 유일한 공통 취미인 언젠가 돈을 모으면 이사 가고 싶은 멋진 집을 둘러보며 잠시나마 행복한 웃음을 짓습니다.

졸업 파티 당일. ‘너무 핑크 아니냐?’라고 하는 엄마의 핀잔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드레스를 사서 입었건만 남자친구 카일과 새로 사귄 부자 친구 제나는 여전히 레이디 버드의 취향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레이디 버드는 자기 의사는 묻지도 않고 졸업 파티 불참을 선언하고 그녀가 좋아하는 노래마저 싫다고 말하는 카일에게 실망하고 맙니다. 레이디 버드는 그제야 깨달았죠. 자신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사람은 남들 보기에 멋있는 부자 친구 제나도 카일도 아닌 절친 줄리라는 것을.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사랑해 주고 못나게 굴어도 받아주는 존재. 그 앞에서 진짜 특별하고 자유로운 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죠.

한편, 가정 형편을 고려해서 집 근처 대학으로 진학하라는 엄마의 반대를 무릅쓰고 뉴욕에 있는 대학교에 원서를 넣었던 레이디 버드는 드디어 합격 통지서를 받게 됩니다. 합격 소식을 알게 된 엄마는 절망합니다. 명예퇴직한 남편 대신 투잡 쓰리잡을 뛰면서 가정을 지키려는 자신의 노력은 외면한 채 이기적으로 구는 딸이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레이디 버드는 엄마와 끝내 화해하지 못한 채 어색하게 이별을 맞이하고 맙니다. 주차비가 든다는 핑계로 공항 앞까지만 데려다주고 돌아가던 엄마는 뒤늦게 차를 돌려 공항으로 오지만 비행기는 이미 떠난 후였죠. 엄마의 뜨거운 눈물을 알지 못한 채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 하던 새크라멘토를 드디어 떠나게 되는 레이디 버드. 작고 초라한 고향 동네를 떠나 뉴욕으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마치 하늘을 비상하는 새의 그것처럼 비장하고 두근대며 자유롭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 탄 레이디 버드는 알았을까요? 이곳이 그리워질 거라는 사실을.

뉴욕에 도착한 레이디 버드는 짐 속에서 엄마가 미처 전하지 못한 사과 편지를 발견하게 되고 엄마의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레이디 버드는 그제야 사람들에게 자신의 본명과 고향에 대해 솔직 당당하게 말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술 먹다 혼절해서 응급실에 실려 가는 기행을 저지르기는 했지만 말이죠. 철저히 혼자인 도시 뉴욕에서 그녀는 지독한 고독감을 느낍니다. 마스카라가 번져 판다 눈이 된 그녀를 아무도 신경 써주지 않는 뉴욕. 자유롭지만 그래서 더욱 삭막한 그곳에도 그녀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건 없었습니다. 그녀는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특별함은 고향의 익숙한 풍경과 가족이 있는 집에 있었다는 것을.

방황은 청춘의 권리라 하던가요. 사춘기 시절 반항과 방황은 정도가 다를 뿐 누구나 겪고 넘어가는 필수 과정입니다. 봄인지 여름인지 가을인지 겨울인지 철모르게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겪어봐야 진짜 내 모습에 맞는 계절(季節)을 찾을 수 있는 법이죠. 새들은 반드시 날아갑니다. 돌아올 걸 알면서도. 언젠가 다시 돌아온다 해도 세상에 나가 직접 부딪치고 깨지며 자신의 신념과 취향을 알아가는 용기야말로 청춘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