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de> <img src="/icons/book-closed_gray.svg" alt="/icons/book-closed_gray.svg" width="40px" />
달콤한 혼잣말 (지은이: 김미양 / 장르: 혼잣말)
</aside>
그녀는 작은 섬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디에서나 바람을 느낄 수 있고, 어디를 보아도 푸른 바다가 넘실대는 섬. 하지만 탁 트인 그곳이 그녀에게는 감옥과도 같았습니다. 섬 밖으로는 나갈 수가 없으니 보이지 않는 벽에 둘러싸여 갇힌 신세나 다를 바가 없었지요.
그녀는 매일 밤, 숨을 죽이고 섬 밖을 향해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들려오는 것은 오직 파도 소리뿐. 외로움이 철썩, 그녀를 덮쳐올 때마다 마음속엔 누구와도 나누지 못한 감정들이 고이고 또 고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그날도 그녀는 섬에 누워 파도 소리를 들으며 별들의 숫자를 하나 둘 헤아리고 있었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까만 공간 위에 점점이 흩뿌려진 작은 별들. 어둠 속에서 침묵에 잠긴 채 희미한 빛으로만 인사를 건네는 별들.
순간, 그녀는 생각했습니다. 컴컴한 바다 위에도 저 밤하늘의 별들만큼이나 많은 개수의 섬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을지도 모른다고요. 어쩌면, 바다 위에 외로운 존재는 그녀 하나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상상했습니다. 수많은 섬 중 어딘가에서 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있을, 그녀를 닮은 누군가의 얼굴을.
그 후로, 보이지 않는 그 누군가에게 안부를 전하는 일이 그녀의 간절한 꿈이 되었습니다. 꼭 눈앞에 있어야만 대화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멀리 떨어져 있어도 같은 밤하늘을 볼 수 있고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별들의 깜빡임을 읽을 수 있는 것처럼, 이 섬 안에서 울려 퍼지는 그녀의 목소리도 언젠가는 영원 같은 어둠을 가로질러 누군가의 밤 위에 비치리라 믿었어요.
그녀는 혼잣말 같은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매일 밤 두 시간씩, 조각조각의 이야기들을요. 어떤 날은 눈물이었고 어떤 날은 아픔이었고, 또 어떤 날은 따스한 위로였지요. 그녀 안에 고여 흐르고 있던, 실은 누군가가 먼저 들려주길 바랐었던, 그러한 말들을 끄집어내어 아련하게 반짝이는 문장으로 다듬기 시작한 겁니다.
물론 쉽지는 않았어요. 별보다 더 아름다운 문장을 단번에 만들어낼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지요.
어젯밤도, 그리고 오늘 밤도, 그녀는 단어의 파편들을 붙잡고 한숨 섞인 나날을 보내고 있답니다.
나 혼자 어쩌지 못한 수많은 감정이 허공을 맴돌다 가루가 되어 사르륵 하릴없이 떨어진다.
두 손 가득 쥐어 봐도 이내 흩어져버리는 무수한 알갱이들,
빛을 발하지 못하고 바스러져 가는 작은 별 같은 속삭임들.
달빛이 바다의 표면을 어루만지는 이 밤, 고단한 잠에 빠진 그대에게로 날아가 검은 머리칼을 쓸어주고 싶지만 나는 단 한 줄의 인사조차도 쉬이 빚지 못한다.
만일 이 밤에 내게 허락한다면, 내 안의 가장 반짝이는 별 하나를 닦아서 그대의 베개 밑에 묻어두고 오리라.
그러나 오늘 밤도 나는 무엇하나 건져 올리지 못하는 빈손으로 그저 허공만을 가로젓는다.
앞으로 그녀는 어떻게 될까요? 과연 사람들에게 그녀의 이야기가 전해질 수 있을까요?
그녀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실을 당신에게만은 말해두고 싶군요.
지금 이 순간, 어디선가 밀려와 그녀의 발목을 적시고 이내 사라져 버리는 저 검은 물결 속에는 누군가의 진한 잉크가 한 방울 녹아있다는 사실을요. 그녀의 손끝에서 떨어진 눈물 한 방울과 먼지처럼 부서져 버린 초라한 문장들도, 파도 안에 섞여 어딘가로 흘러가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