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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은 왜 짠가에 대하여 (지은이: 김미양 / 장르: 시 바꿔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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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 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 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 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 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그만 국을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 댔습니다 그러자 주인 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만 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 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 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_ 함민복 시 「눈물은 왜 짠가」 중에서
몇 년 전 겨울이었습니다. 설을 며칠 앞두고 일찌감치 부모님을 뵙기 위해 제주도로 내려갔을 때의 일입니다. 당시 부모님은 새로운 집으로 이사가 한창이었습니다. 제주도 집값이 오른다, 땅값이 오른다, 뉴스에서 떠들어대도 한평생 셋집만 전전해 온 우리 가족과는 영 상관이 없는 일인 줄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투기 열풍이 인적 드문 산언저리까지도 불어닥쳤는지, 감귤밭 옆 쓰러져가는 가옥을 빌려 직접 수리해 가며 몇 년을 그 지붕 아래 누워 자고 농사를 지었던 부모님은 하루아침에 집을 비워줘야 할 신세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부모님이 급히 돈을 마련하여 빌린 집은 서귀포 시내 한복판에 있었습니다. 온 식구가 제주시에서 지지고 볶고 부대끼며 살다 나는 육지로 떠나고 부모님은 산골 과수원에서 농사를 짓고, 그렇게 뿔뿔이 흩어져 살아온 지도 어느새 십여 년, 그사이 훌쩍 뛰어버린 시내 주택의 사글세 값에 부모님은 또 한 차례 허리가 꺾였을 것입니다.
어쨌든 나는 아직 짐도 다 풀지 못한 그곳에, 우리 집이라고 부르기에도 부모님 댁이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한 그곳에, 부모님을 뵈러 갔습니다. 주위가 온통 산이고 나무였던 과수원집이 아닌, 게스트하우스와 모텔과 편의점과 생과일주스를 파는 카페가 줄줄이 늘어선 거리 안쪽의 작은 주택에서 나를 맞이하는 부모님의 모습은 무척이나 생경하게 느껴졌습니다.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는 관광객보다 우리가 더 이 도시의 이방인인 것 같았습니다. 어딘가 모르게 가라앉아있는 분위기를 띄워보려 이사도 했는데 짜장면 짜장면은 자장면으로 수정 × 이나 시켜 먹자고 명랑하게 외쳤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오분자기 뚝배기를 사주겠다며 손의 먼지를 털고서 나갈 채비를 하셨습니다. 육지의 친구들이 물을 때마다 우리는 그런 ‘관광지 음식’은 안 먹는다며 코웃음을 쳤던 바로 그 오분자기 뚝배기였습니다.
“우리 딸 오랜만에 내려와신디 오분자기 뚝배기는 먹어 봐사주.”
대문 밖을 나와 몇 발짝 걸으니 유명하다는 식당 간판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이미 만석이었고 대기하는 사람도 여럿이었습니다. 제주도 말을 쓰되 서귀포에 섞이지 못하는 이상한 이방인 셋은 결국 관광지 맛집엔 들어가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있다 맞은 편 식당으로 들어갔습니다. 메뉴는 아까 그곳과 다를 것이 없어 보이는데, 자리에 앉은 손님이라고는 우리 가족뿐이었습니다. 곧 오분자기인지 새끼전복인지 하여튼 해산물이 듬뿍 들어간 뚝배기 세 개가 상에 놓였습니다.
“에이, 앞집만 못한 게. 제라하게 유명한 델 데려강 멕여사 할 껀디.”
아버지는 국물을 한술 떠서 맛을 보시곤 못내 아쉬워하셨습니다. 나는 다시 한번 분위기를 띄워보려 통영에서 먹어본 해물뚝배기보다 훨씬 맛있다는 둥, 전복이 하나도 안 딱딱하고 엄청 야들야들하다는 둥, 부지런히 떠들어댔습니다. 부모님은 말없이 젓가락을 움직여 자신들의 뚝배기에 든 전복이며 딱새우를 내 뚝배기 안으로 옮겨 담았습니다. 아무리 만류해 봐도 내 뚝배기 안의 전복 개수는 자꾸만 자꾸만 늘었고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았습니다. 스테인리스 밥공기 옆으로 전복 껍데기 무덤이 달그락달그락 쌓여가는 동안 부모님은 국물과 나물 반찬만으로 식사를 마치셨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시인이 어머님을 모시고 설렁탕을 먹다 속으로 중얼거렸다지요.
눈물은 왜 짠가
나는 어쩐지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습니다.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는 서귀포 바다 같은 뚝배기가 부모님 가슴속에서 한평생 파도치며 끓어오르는 까닭입니다. 나는 그 뜨겁고 짭짤한 바닷물로 허기를 채우고 여태껏 자라났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