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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은 너무 어려워 (지은이: 김다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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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06일 오늘은 월요일. 평범한 사람들은 모두 출근 중이겠지만 나는 며칠 전 처음 본 남자랑 단둘이 한라산을 가고 있다. 새벽 공기는 너무 차갑고 하늘에선 비가 내리고 있다. 집 뒷산도 못 오르는 내가 한라산을 오르고 있다니 날 아는 모두가 웃겠지.

짙은 어둠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다. 우리는 오르는 인원을 적고 오르기 시작했다. 오르다 보니 날이 밝았고 새벽에 느꼈던 짜증은 어느 순간 사라져 있었다. 체력이 안 좋아서 중간중간 많이 쉬었는데 이 남자는 군말 없이 같이 쉬어준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아주 힘들었을 것 같다.

느린 걸음으로 간신히 시간 맞추어 진달래밭 휴게소에 도착했다. 어제 산 보온병에 담아둔 뜨거운 물을 컵라면에 붓는다. 이렇게 맛있었나? 우리는 서로 모습을 보고 웃는다. 쉬었으니 이제 다시 올라가야지. 비가 오던 한라산이 어느새 눈이 오고 있다. 여름에 한라산은 등반해 본 적 없지만 이 설경을 이길 순 없을 것 같다. 구름에 가려졌다 보이는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백록담에 다가갈수록 날씨는 점점 안 좋아졌다. 바람도 많이 불고 구름 속에 갇힌듯했다. 아름다운 풍경이 안보이니까 지쳐갔던 것 같다. 그런 날 알았는지, 이 남자는 갑자기 뛰어 올라갔다가 내려오더니 정상에 다 왔으니 조금만 힘내라고 격려해 준다. 이상하게 언제 지쳤었나 싶었다.

드디어 도착한 백록담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지만 사진도 찍고 이 남자와도 찍어본다. 어느새 엄청나게 친해진 느낌이다. 막상 내려가려니 눈이 쌓인 가파른 한라산이 무섭게 느껴지더니 긴장이 풀렸는지 허벅지 뒤 근육 쪽에 통증이 느껴졌다. 속도는 점점 느려졌고 더 이상 우리 앞에도 당연히 뒤에도 인기척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절뚝거리던 나는 걷기가 힘들어져 팔을 잡아도 되겠냐고 남자에게 물어봤다. 여전히 배려심이 좋은 이 남자는 당연히 된다고 해준다. 막상 팔을 잡으려니 부끄럽기도 민망하기도 해서 팔뚝 쪽을 살며시 잡아본다.

너무 불편했다. 그냥 손을 잡을걸.

이라고 생각한 순간 이 남자가 내 손을 잡는다. 두근두근. 다리를 다쳐서 심장이 뛰나? 생각해 본다. 손을 잡아서 조금은 더 수월하게 내려갔지만 절뚝거리는 내 다리의 속도는 여전히 느렸다. 한라산 한쪽에 붙어있던 산악구조대 연락처로 전화를 해봤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천천히 잘 내려와 보라는 말뿐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머쓱하게 웃으며 다시 천천히 내려가 본다.

비가 와서 다 젖은 한라산의 길은 매우 미끄러웠고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은 없던 공포도 불러왔지만 묘하게 든든하다. 깜깜한 밤이 다시 찾아왔고 한라산의 하늘은 수많은 별로 나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혹시나 핸드폰이 꺼질까 봐 한 사람의 핸드폰으로만 빛을 비추며 조심스럽게 여전히 손을 잡고 한라산에서 내려간다.

거의 12시간이 걸려 한라산에서 내려온 우리는 멀리 보이는 가로등 빛이 너무 반가웠다. 새벽에 꽉 차 있던 주차장은 우리가 타고 온 차 한 대만 덩그러니 있었다. 새벽에 탔던 이 차는 춥고 짜증 났지만, 한라산에 올라갔다 온 나는 이 차가 따뜻하고 아늑했다. 빌려온 장비를 반납하고 치킨과 맥주로 하루를 마무리한 우리는 2년 2개월 후 결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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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다, 시> 프로그램에 참여한 청춘 작가의 작품입니다.

본 프로그램은 2024년 부산광역시, 부산문화재단 <부산문화예술교육지원사업[돋움]> 사업으로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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