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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여행을 떠난 당신에게 ****(지은이: 모아 / 장르: 편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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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린 겨울바람은 당신을 선명하게 떠오르게 한다. 반짝거리던 동그랗고 큰 두 눈동자, 밝고 쾌활한 웃음소리와 함께 초승달처럼 휘어지던 눈매, 다정하고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경쾌한 휘파람 소리 같은 것들. 과거의 당신을 회상뿐인 나는 겨울이 너무나 어둡고 춥고 무거웠다. 숨 막히는 더위에 부채질하면서도 어둡고 추운 겨울밤이 한순간에 찾아올까 봐 겁을 먹었다.

그 겨울 스무 살이던 나는 어느새 당신과 비슷한 나이가 되었다. 늘 어른스러웠고, 늘 힘껏 위로해 주는 사람. 그처럼 다정하고 멋진 어른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와 달리 이룬 것도 없고, 다정한 마음을 가지지도 못했고, 스스로를 견디기에도 벅차다. 이런 내가 미워질 때마다 불도 켜지 않은 방 안에 누워 천장을 유심히 바라보며 당신은 그런 사람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애를 썼을까 가늠해 본다. 나는 언제쯤 당신처럼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봄이 오기 전에 다시 만나기로 했으면서. 벚꽃이 피고 다 떨어질 때쯤 알게 되었다. 어떤 여행은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그렇게 나는 당신만큼 자랄 때까지 꽤 긴 겨울을 보냈다. 그 겨울 동안 이름 세글자에도 와르르 무너졌고, 누군가가 흥얼거리는 콧노래에도 눈물이 났다. 겨울잠을 자는 것처럼 이불 안으로 숨었다. 이불 안에 숨어 사람 소리도 자동차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으로 도망가는 상상을 한다. 아, 어쩌면 당신도 이런 것들이 지겨워져서 긴 여행을 떠난 걸지도 몰라. 어리석은 생각만 늘어놓았다.

어두웠던 겨울이 지나고 나서 목련 나무 하나를 발견했다. 웅장한 나무. 그 가지마다 달린 하얗고 커다란 꽃송이.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얀 꽃잎을 가진 목련. 당신 같았다. 아, 봄이 되니까 정말 우리는 다시 만났구나.

겨울이 되면 비어버린 나뭇가지들을 살펴본다. 빈 나뭇가지에 묵묵히 자리 잡은 목련의 겨울눈. 보드라운 털로 된 껍질에 둘러싸인 겨울눈마저도 당신 같다. 겨울눈은 봄에 피어날 하얀 꽃잎들을 품고 시린 겨울바람과 눈과 비를 묵묵히 견딘다. 마치 내가 당신의 목소리와 미소를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또 봄이 되면 우리는 다시 만날 테지. 여전히 내가 당신을 기억하고 있으니까. 무릎을 꿇고 두 손을 꽉 잡고 당신의 긴 여행이 아프지 않기를 기도한다. 언젠가 시간이 훌쩍 흘러 다른 세상에서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나에게 살아갈 힘을 주어서 고마웠다고. 너무 보고 싶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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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다, 시> 프로그램에 참여한 청춘 작가의 작품입니다.

본 프로그램은 2024년 부산광역시, 부산문화재단 <부산문화예술교육지원사업[돋움]> 사업으로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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