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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가 익는 시간 (지은이: 김미양 / 장르: 자전소설) / (2018년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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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르르…, 뚜르르…, 통화 연결음이 귀가 아닌 목을 타고 흘러들어오는 것만 같다. 목구멍이 콱 막힌 듯 숨을 쉴 수가 없다. 통화 연결음이 멈추고 딸각, 하는 소리와 함께 찾아온 정적. 누군가 수화기를 들고 얼굴 옆으로 가져가는 그 짧은 찰나에 내 심장 박동은 최고조에 이른다. 무섭다. 나는 눈을 질끈 감는다. 대답하지 마. 제발, 대답하지 마. “여보세요오?” 앳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안녕하세요. EBS 교육 만족도 조사입니다. 초등교육…” 잔뜩 긴장한 탓인지 목소리가 갈라졌다. 얕은 기침을 뱉어내고, 미리 외워둔 멘트를 로봇처럼 이어갔다. “초등교육에 얼마나 만족하시는지 몇 가지 여쭙고자 하는데요, 어머님이나 아버님 계시면 잠시 통화 좀 할 수 있을까요?” “잠시만요오,” 수화기를 탁자에 내려놓았는지 둔탁한 소리가 난다. …엄마아아……, 멀리서 아이가 엄마를 부른다. 아이의 엄마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부엌, 욕실, 혹은 베란다. 그 어딘가에서 찌개를 끓이고 있거나 옷에 묻은 얼룩을 지우고 있겠지.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로 수화기 너머의 침묵에 정신을 집중해본다. 무언가, 희미한 말소리가 들려온다. …포근포근 달콤해… 아니, 이건 말소리가 아닌 것 같다. …둥글둥글 부푸는 마음… 여자아이들 여럿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맛있는 꿈을 그려봐요 행복한 꿈빛, 뚜, 뚜, 뚜……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한순간에 차가운 기계음으로 바뀌어버리고,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아뿔싸. 수화기를 내려놓고 나서야 후회가 밀려왔다. 아이의 나이를 먼저 물었어야 했는데…….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앞에 놓인 종이를 노려보았다. A4용지에는 ‘042’로 시작하는 전화번호가 빽빽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방금 통화했던 그 번호 위에 30센티 플라스틱 자를 올려놓고 잠시 망설이다 연필로 줄을 스윽 그어버렸다. 그리고 ‘비고’ 란에 ‘초등 자녀 ×’라고 적었다. 한 개쯤 거짓으로 적는다고 별문제야 생길까. 어차피 여기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다 거짓투성이인데.

구인 사이트에서 이 아르바이트를 발견한 건 지난주였다. 주 5일, 하루 네 시간. 책상에 앉아서 전화로 설문 조사만 하면 되는 업무였는데 시급이 무려 팔천 원이었다. 당장 생활비는 급하고, 그렇다고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할 용기는 나지 않던 차에 이 아르바이트 공고는 기적과도 같았다. 급여를 매주 지급한다고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 첫날, 내 또래로 보이는 여자들 다섯이 나란히 앉아 팀장님으로부터 교육을 들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설문 조사의 정체란 바로 수천수만 개의 전화번호 목록을 보고 집집마다 전화를 걸어 초등학생 자녀가 있는 가정을 추려내는 일이었다. 팀장님은 절대 회사 이름을 밝히지 말고 ‘EBS 교육 만족도 조사’라고 둘러대라고 했다. 어린아이가 받으면 바로 어른을 바꾸라고 하기보다는 ‘우리 친구 몇 살~?’이라며 친근하게 다가가는 편이 정보를 얻기에 유리하다는 ‘팁’까지 알려주었다. “안녕, 우리 친구는 몇 살이야?” 옆에서 진아 언니의 고운 음성이 들려왔다. 슬쩍 옆 책상을 보니 언니는 벌써 두 페이지째까지 진도가 나간 모양이었다. 언니는 고개를 왼쪽으로 기울여 수화기를 어깨 위에 고정시킨 채 오른손으로 부지런히 필기를 하고 있었다. 동그라미가 쳐진 전화번호, 우리가 수확한 유용한 정보들은 내일 아침 영업팀 직원들에게 선물처럼 전달될 터였다. 전화 한 통 할 때마다 입안에 침이 바싹 마르는 나와 다르게 영업팀 직원들은 모두 프로였다. ‘안녕, 집에 엄마 계시니?’ ‘응, 아줌마는 엄마 친구야’ ‘수정아, 엄마 좀 바꿔줄래?’ 따위의, 친근함을 가장한 거짓말들. 교육용 CD를 팔기 위해 그 말들을 쉬지 않고 반복하면서도 지친 기색이 없었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도 집요하고 성실한 전화가 걸려왔었다. 얼굴을 알 수 없는 그림자 같은 사람들이 하루에도 서너 번씩 ‘엄마’를 찾았다. 때로는 친근하게, 때로는 언성을 높이면서. 따르릉, 따르릉, …. 집안에 전화벨 소리가 울려 퍼질 때마다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었다.

책상에서 부르르 진동이 느껴졌다. 책상 위에 놓여있던 핸드폰을 재빨리 집어 들었다. ‘1599’라는 앞 번호를 확인한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반사적으로 모서리의 버튼을 꾹 누르고 핸드폰을 뒤집어놓았다. 책상은 더 이상 떨리지 않는다. 하지만 나를 쫓는 그림자마저 털어낼 수는 없었다. 그들이 보내올 문자가 벌써 눈에 선하다. 백이영 님 [06-1학기] 대출이 장기 연체 중으로 확인되어……. 그 벽돌 같은 글자들이 어깨 위에, 머리 위에, 차곡차곡 내려앉아 나를 짓누른다. 어디로도 도망칠 수가 없다. 애써 모르는 척 종이 위의 숫자들에 정신을 집중 해본다. 오늘 중으로 걸어야 할 전화번호 목록이 아직 한참 남아있었다. 수화기를 들어 번호를 누르는 사이, 누군가 톡톡 내 오른팔을 건드렸다. 진아 언니였다. 언니의 흰 손이 빠르게 내 책상 위에 초콜릿을 떨어뜨리고는 사라졌다. 작고 네모난 ‘ABC’ 초콜릿 두 알. 잠자리 날개처럼 투명하고 얇은 껍질이 형광등 불빛 아래 반짝거린다. 그 날개 끄트머리에 시선을 가만히 고정한 채로 뚜르르, 뚜르르, 반복되는 통화 연결음을 들었다. 혀끝이 쓰다.

차가운 바람이 두 뺨에 달라붙었다. 노란 전구를 칭칭 두른 가로수들이 저마다 빛을 내면서 해 저문 거리를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어디선가 크리스마스 캐럴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나는 ABC 초콜릿 한 알을 입에 밀어 넣으며, 머리 꼭대기쯤에 매달린 전구를 바라보았다. 전구 하나가 유독 천천히 켜졌다가, 꺼졌다가, 또다시 켜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까암빡, 또 까아암빡. 제주도를 떠나 자취를 시작한 지 벌써 6년이 다 되어가지만 내 삶은 아직도 깜깜이다. 이제 올해가 가고 2012년이 오면, 만 나이로 세어도 이십 대 초반이라고 우길 수 없는 나이가 되어버린다. 시간은 왜 이리 빨리 흐르는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한숨의 크기만큼 하얀 입김이 선명하게 눈앞에서 번져나갔다. 마지막 남은 초콜릿을 입술 사이로 밀어 넣었다. 입술과 손가락 사이에서 파스락, 소리가 났다. 비닐 껍질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방향을 틀어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금요일 저녁, 5일 치의 급여가 정확히 통장에 들어왔다. 통장에 찍힌 ‘160,000’이라는 숫자를 확인하고, 재빨리 도시가스 한 달 치 요금을 이체했다. 채 발목을 적시기도 전에 썰물처럼 빠져나가 버린 잔고의 흔적을 바라보는 것이 뿌듯하지도 보람차지도 않았지만, 나는 이 순간에 느껴지는 허무를 ‘안도’라 부르기로 한다. 몇 달 전 도시가스가 끊겼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커피포트에 물을 끓여 찬물과 섞어가며 간신히 머리를 감을 때마다 얼마나 지독한 서러움에 몸서리가 쳐졌던가. 땡땡하게 차가워진 목덜미에 드라이어로 뜨거운 바람을 쐴 때, 피부에 온기가 저릿저릿 스며드는 동안 자괴감도 깊숙이 스며들어 내 몸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 같다. 은행 365코너를 나와 집으로 가는 길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가방에서 3단 우산을 꺼내 펼쳤다. 하루하루를 버티는 일이, 다가올 내일을 준비하는 일이, 일기예보에 맞춰 우산을 하나 꺼내두는 정도의 난이도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입금되자마자 반의반의 반 토막이 나버린 통장 잔고로 짐작하건대 올겨울은, 아니 당분간 몇 년은 더, 혹독한 추위가 계속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고소한 향기가 비 냄새에 섞여 우산 속까지 둥실둥실 흘러들어왔다. 횡단보도 옆 길가에 붕어빵 가판대가 세워져 있었다. 세 마리에 천 원. 조금 전 인출했던 만 원짜리 한 장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이천 원어치만 주세요.” 말을 꺼내놓고 아차 싶었다. 철망 위에 쪼르르 놓인 붕어빵들은 모두 삐쩍 마르고, 가장자리가 검게 타있는 상태였다. 아저씨는 허둥지둥 붕어빵 틀을 열었다. “잠깐만요, 내가 새로 구워서 줄게요.” 나는 검은 틀 안에 반죽이 채워지고 그 위에 앙금이 한 숟갈씩 얹히는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잠깐이 아닌 한참 동안이나. 가는 안개비가 우산 주변에 너울거리다 서서히 어깨를 적셨다. 틀에서는 또 까맣게 타버린 붕어들이 연달아 나왔고, 시간이 길어지는 게 민망했던지 아저씨는 내게 이런저런 말을 붙였다. ‘대학생이에요?’ ‘아니요. 졸업했어요.’ ‘어려 보여서 난 학생인 줄 알았네. 이 근처에서 일하나 봐요.’ ‘…….’ 이 근처에 있는 시청과 법원, 빌딩마다 촘촘히 자리 잡은 변호사 사무실, 법무사 사무실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에 나의 일터가 있었다. 네 맞아요, 이 근처에서 일해요, 일을 하고 있긴 한데……. 잠시 생각에 잠긴 내게 아저씨는 봉투를 내밀었다. “미안해요. 내가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래도 잘 구워진 거로만 골라서 담았어요.” 붕어빵 봉투를 받아 든 순간 묵직한 허기가 밀려왔다. 봉투를 꼭 끌어안고 파란 신호가 켜지기만을 기다렸다. 횡단보도에는 사람들이 우산 간격만큼 떨어진 채로 서 있었다. 옆에서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응, 엄마. 나 거의 다 왔어. 아빠 생일 케이크 사서 들어가려고. 시험? 아니 있잖아, 문제 풀기 시작한 지 10분도 안 됐는데 배가 아파서 미치겠는 거야. 바지에 쌀 것 같아서 그냥 막 화장실로 달려갔다니깐?” 몇 살쯤 되었을까. 우산에 가려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여자는 푸하하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어, 애들도 내 얼굴 보고 식겁했잖아. 하얗게 질렸다고. 응, 엄마. 지금은 괜찮아. 응, 다음 달에 시험 또 있어.” 파란불이 켜지고, 여자는 나와 나란히 길을 건넜다. 몇 발짝 걷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았지만 여자의 우산은 인파 속에 섞여 사라져 버린 후였다. 집은 캄캄했다. 형광등을 켜고, 차가운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봉투를 펼쳐보았다. 연갈색 붕어빵은 모두 일곱 마리였다. 한 마리를 집어 반으로 가르자 팥앙금에서 포르르 김이 올랐다. 앙금에 혀를 갖다 대었다. 뜨거웠다. 여자는 지금쯤 케이크 상자를 들고 집에 도착했을까. 뜨겁고 달콤한 것을 한입 베어 물기도 전에, 목이 메어왔다.

어릴 적부터 나는 늘 집에서 혼자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여자아이의 유일한 즐거움은 ‘꼬마 요리사’를 시청하는 일이었다. 책가방을 내려놓고 나면 메모지와 연필을 들고서 경건한 마음으로 안방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알사탕만 한 크기로 튀긴 꼬마 도넛, 수박을 둥글게 파내어 주스에 둥둥 띄워놓은 화채.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신기한 요리들을 구경하다가 저녁이 되면 엄마가 만들어둔 밑반찬을 꺼내어 밥을 먹었다. 무말랭이무침이나 콩자반 같은 반찬에 묵은쌀 냄새가 나는 밥을 씹고 있노라면 늘 궁금해졌다. 꼬마 요리사가 먹는 저 요리들은 대체 어떤 맛이 날까? 하지만 나로선 상상할 수 없는 맛이었다. 나는 그저 ‘꼬마’일 뿐, ‘요리사’는 될 수 없었으니까. 아이답지 않은 매끄러운 진행 솜씨로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꼬마 요리사가 막상 중요한 포인트에서는 아이다움을 뽐내며 위기를 피해 가기 일쑤였던 것처럼. “우리 친구들, 가스레인지를 켤 때는 꼭 엄마와 함께하세요.” “반죽을 튀길 때는 엄마에게 부탁하세요. 기름이 튈 수 있으니까 절대 가까이 가면 안 돼요.” 꼬마 혼자서는 만들지 못하는 요리법이 빼곡히 적힌 메모지는 안방 전화기 옆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나 혼자서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불쑥 그런 용기가 생겨난 건 1월의 어느 날이었다. 슈퍼에 갔다 우연히 ‘곰표 핫케잌 가루’를 발견한 나는 마음이 들떴다. 포장지에 인쇄된 핫케이크의 사진은 근사했다. 두툼한 케이크가 켜켜이 쌓여 있고, 황금색 시럽이 주르륵 흐르면서 그 케이크를 적시고 있었다. 일주일 치 용돈을 털어 핫케이크 가루를 사 들고 와서는 신이 나서 부엌으로 달려갔다. 내 손으로 직접 만든 핫케이크는 사진보다 더 근사할 것 같았다. 며칠 후면 내 생일이었고, 또 몇 달만 지나면 곧 2학년이 될 터였다. 한 살을 먹고 한 학년 올라가는 시기. 말하자면, 두려울 게 없는 시기였던 것이다. 텔레비전 속 꼬마 요리사처럼 하얀 가루를 체에 치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릇 안으로 곱고 하얀 눈이 쏟아졌다. 늘 텔레비전에서 봐 오던 그 느낌이었다. ‘펄펄 눈이 옵니다 바람 타고 눈이 옵니다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송이송이 하얀 솜을’하는 동요 속 선녀님이 된 것 같기도 했다. 달걀을 깨서 풀고 물과 가루를 섞어 반죽하는 과정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프라이팬을 달구고 반죽을 한 국자 떠 넣었다. 잠시 후에 반죽 표면으로 구멍이 하나둘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는 숨을 죽이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구멍이 뽕뽕 뚫린 연노란색 반죽은 꼭 달의 표면 같았다. 이것 봐, 나도 잘할 수 있잖아. 한껏 들뜬 기분으로 뒤집개를 꺼내 반죽을 젖혔는데, 바닥이 새카맣게 타 있었다. 포장지의 ‘조리 예’와는 거리가 먼 모양새였다. 그 와중에 프라이팬 가장자리에 손날을 데고 말았다. 엉망으로 구워진 핫케이크는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어떤 부분은 탄내가 났고, 어떤 부분은 날 밀가루 냄새가 났다. 가장자리 한쪽을 뜯어서 핫케이크 가루 안에 별첨으로 들어있던 ‘곰표 핫케잌 시럽’에 푹 찍어 먹었다. 라면 수프만 한 봉지에 들어있는 시럽은 그 크기 때문인지 더 소중하고 달게 느껴졌다. 손가락에 묻은 시럽을 핥았다. 조금 전 데인 상처에까지 시럽이 끈적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무심코 입술을 갖다 대니 붉어진 상처가 더 화끈거렸다. 어느새 엄마가 퇴근할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겁이 났다. 전에 혼자 보리차를 끓이려다가 깜빡 졸아서 주전자를 다 태울 뻔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퇴근하고 돌아온 엄마는 바닥이 그을린 양은 주전자를 보고 불같이 화를 냈었다. ‘누가 언제 너한테 이런 거 하랜 시켜나시냐?’ 또 그렇게 혼날 생각을 하니 가슴께가 쿵쿵 울리는 것 같았다. 핫케이크를 만들었던 흔적을 없애려고 부랴부랴 설거지를 시작했다. 프라이팬과 그릇을 수세미로 문지른 후에 하나씩 헹궈나가는데, 개수대의 물이 빠지지 않고 계속 차오르더니 곧 넘칠 지경이 되고 말았다. 남은 핫케이크를 몽땅 개수대에 쏟아버린 게 문제였다. 당황한 나는 수채통에 손을 집어넣어 거름망을 빼내 버렸다. 실패의 덩어리들이 숭덩숭덩 수도관 밑으로 떠내려갔다. 물도 전부 빠져나갔다. 내 인생 첫 케이크는 그렇게, 어딘가로 사라졌다.